어느 날 창가를 바라 보고 있던 아빠가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봐라, 얘들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온다." 아이들이 창가로 뛰어 갔다. 곧 두 아이는 실망하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에이, 엄마잖아요." 과연 그 아이들이 낙담하며 한 말이었을까? 아빠가 말한 어머니에 대한 평가는 자녀들의 마음에 오래오래 남아있게 된다. 존귀함을 받는 부모는 부모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친지들에게, 동기들에게 영광스러운 아내로 만들어주는 것은 곧 스스로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우리는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유교적 관념 때문에 아내를 자랑하기 보다는 깎아 내리는데 이골이 나있다. 성경대로 행하기 보다는 그런 면에서는 철저하게 관습을 따르는 이중성을 흔히 본다. "남편 여러분, 이와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베드로전서 3장 7절)."
그렇다. 아내는 깨어지기 쉬운 그릇과 같이 중히 여겨야 한다. 아내는 은혜를 유업으로 같이 받을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덧붙여서 "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 귀히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자신의 경건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내를 존귀하게 대하라는 명령이다.
남편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나의 아내라고 생각하는가? 자녀에게 비치는 엄마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여기면 자녀 또한 엄마를 쉽게 대한다. 엄마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친척들 역시 그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를 귀히 여기고 영광스럽게 대할 때 아내는 남편을 하늘같이 믿고 행복한 생활을 해 나가게 된다.
예수께서는 여성들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다. 당시에는 남자들만이 랍비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말씀을 주시며 음식 장만에 시간 보내기를 원치 않으셨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누가복음 10장42절)"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부활 아침에도 부활하신 몸을 여자에게 먼저 보이셨다. 여자를 천히 여기던 그 시대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장 28절)"라고 말씀하시면서 동등한 대우를 하셨다.
남편들이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명령을 생각한다면 아내를 우습게 보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내를 귀히 여기는 그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결코 숨길 일이 아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따라 바뀌기 보다는 부모가 행동하는 대로 닮아간다. 아내가 힘든 일을 할 때 같이 도와주고, 설거지도 함께 해주며, 가끔 포옹도 해주는 그런 모습을 자녀들에게 의도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장난을 심하게 칠 때 '나의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랑의 표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참으로 힘들고 역겨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남편들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교회의 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그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부이다. 특히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한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 주님이 하신 명령을 우리는 철저하게 순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며(에베소서 5장 28절, 골로새서 3장 19절)." 존귀하게 여기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라. 새롭고 신선한 삶을 이루라(요한복음 8장 1절-11절)."
출처 : 추부길 목사(기독교 가정 사역 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