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결혼의 원칙 중에서 우선적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이 '떠남'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그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결혼 축사에서도 분명히 언급된 이 '떠남'의 원리가 유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한국 교회에서 참으로 갈등의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이 '떠남'은 누군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떠난다는 것은 부모의 양육을 받던 자녀의 관계에서 완전한 성인으로서의 관계 전환을 의미한다.
즉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닌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최우선이 되는 일대 혁신을 의미한다. 이는 단지 분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부모보다는 배우자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그 부부의 관계가 다른 무엇을 앞서는 최우선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 생활이 어렵게 되는 것은 우선 부모로부터 떠나지 못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효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두 사람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인도해 주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부부 사이에 아무도 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부모들은 자녀들 곁에 있어야 하나(Beside them), 자녀들 사이에 있어서는 안된다(Not between them)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 후에 부모의 의사를 존중하기는 하되 부모의 영향에서 얼마나 독립된 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결혼이 성공적이냐 아니냐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여 출가시킴에 있어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이 둘 사이에 서서 조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리모트 컨트롤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탯줄을 끊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 태중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탯줄을 한번 끊었을 때 독립적인 생명이 된 것처럼 결혼을 하면서는 그동안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가지 영향을 입고 자라왔지만, 이제는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정신적인 탯줄을 끊으면서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살아가야 한다. 떠나지 않았을 때 갈등이 시작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부간의 갈등이다.
'우리 어머니는 안그러던데 당신은 왜 그래?', '당신은 우리 엄마 솜씨 따라 갈려면 아직 멀었어!' 이러한 말들이 바로 부모를 떠나지 못한 데서부터 나오는 말이다. 또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내가 너의 시부모인데....', '얘야, 내방에 건너와서 자거라.' 이런 말들은 자녀를 떠나 보내지 못해서 나오는 말들이다. 이렇듯 떠나보내지 못해서 생기는 갈등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멍들고 있는지 모른다. 아내와 며느리가 갈등이 있을 때 남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아내편을 들자니 어머니가 서운할게고, 어머니 편을 들자니 아내가 난리칠테고, 그래서 '모르겠다. 차라리 늦게 들어가자', 또는 '아내야 어찌되든 일단 엄마 편을 드는게 옳지'하고 일방적 응원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가 속으로 병들어 가는 것은 모르고 말이다.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들이여. 결혼한 자녀들을 제발 떠나 보내자. 그들만의 공간과 생각을 충분히 존중해 주어야 한다. 손자가 아들네 방에서 아무리 울어 제치더라도 그들 방 앞에 가서 '내가 봐주랴?'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며느리를 외인 취급하지 말고(요일4:7-11), 있는 그대로 용납해야 한다(엡 4:2).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자녀를 품어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들이여, 부모를 공경하되 주안에서 공경하라. 그러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도 끼어 들지 못하게 하라. 단지 예수님만 빼고는 말이다. 결코 부모가 끼어 들어서도 안된다. 일단은 부부 관계가 최우선임을 잊지 말자. 그 다음이 자녀, 그리고 부모의 순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원리이다. 생각해 보라. 나는 과연 떠나 있는가? 나의 우선 순위 1번이 과연 배우자인가?
출처 : 추부길 목사(한국 가정 사역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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