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성경적 결혼의 세번째 원리가 이 '하나됨'의 원리이다. 여기서 '하나됨'이란 우선 가장 친밀한 연합, 즉 '性'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부부간의 성적 교제는 부부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성적인 연합은 결코 육체적 사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 全存在的 사건이요, 정신적 合一과 영적 合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만큼은 '1+1=1'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남자에게는 이 정신적, 영적 합일이 없어도 만족이 있을지 모르나 여자에게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부가 완전히 한몸이 되는 이때, 두 사람은 자녀를 낳음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었을 때 잉태된 자녀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자녀는 그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과연 하나인가? 모든 것이 하나인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자.
또 하나, '하나되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경제 문제이다. 요즘 상당수의 부부들이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가 아니다. 언제든지 갈라 설 것을 전제로 한 결혼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투명해야 되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치관에 있어서도 하나이어야 하고 주거지도 하나이어야 하며 비전도 하나이어야 한다. 부부의 삶, 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가 되지 않고는 온전한 결혼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어떤 것에도 우리는 하나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부부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부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야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다. 부부가 서로 통하면 지루하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게 된다. 예전에는 아내가 일방적으로 참았으나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부부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세번째 원리인 '하나됨'의 원리이다.
'두 사람이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더라'. 성경적 결혼의 네번째 원리가 바로 이 '친밀성'의 원리이다. '친밀성'의 원리란 결혼 생활에 있어서 허물이나 결점이 결코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허물이나 결점을 문제삼는 것이 가장 비겁한 행위이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돕는 배필로서 결혼을 만드셨고 또 함께 살도록 배려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곧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정서적(감정적) 친밀함도 있다. 정서적 친밀감은 상대방을 아주 깊히 이해할 때, 그리고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과 삶에 대한 태도를 나눌 때 생겨난다. 이 정서적인 친밀감은 다른 모든 형태의 친밀감의 밑바탕이자 최선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정서적 친밀감을 위해 부부는 우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말을 가로막지 말아야 하며, 배우자의 느낌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 배우자를 소유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결혼의 커다란 목표중의 하나는 서로간의 완전한 개방과, 몸과 마음 전체에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친밀함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이 일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가야 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율법대로 잘잘못을 밝히려고 하지말고 용납하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율법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관계가 되면 부부 사이가 살벌해진다. 거저 주는 은혜(Grace)의 관계, 이 은혜는 시간적으로 지속적이며 공간적으로도 변함이 없다. 구원이 은혜이듯 배우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결혼의 이 네가지 원리를 붙잡고 살자. 거기에 하나님의 결혼에 대한 중요한 설계도가 있다.
출처 : 추부길 목사(한국가정사역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