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이혼의 조건'으로…
내 나이가 20대 끝자락에 간당간당 걸렸을 때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죄다 결혼 소식이었던 적이 있었다. 몇 년을 연락 한 번 안하다가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반갑다고 호들갑 떠는 것들 얘긴 길게 들을 것도 없다. '결혼하는구나?' 물으면 민망한 듯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결혼소식이 쏟아지고 나서 조용한 것도 잠시, 임신을 했네, 첫 애를 낳았네 하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 중엔 예상치 못한 소식도 종종 있다. '걔? 이혼했잖아~.'
이혼율 세계 3위의 대한민국, 하루 평균 352쌍의 부부가 남남이 되고 있다니 결혼 후 들려오는 이혼 소식은 임신 소식만큼이나 놀랄 일도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가 어떻든 누구랑 만나서 어떻게 결혼했는지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이혼했다는 사실은 역시 쇼킹한 일이다.
술김에 사고 쳐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울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지? 사실 집안, 학벌, 능력, 성격 등등 얼마나 재고 따져서 고른 남자인지 내심 부러워한 적도 많다. 난 대출 갚느라 다크써클 짙어지는 동안, 쟨 피부과에서 레이저시술 받겠지 하는 부러움들. 그런데 왜 들려오는 이혼 소식은 따지고 골라서 간 이들의 것이 더 많아 보이는 걸까.
갈라선 이유? 다들 하는 말 있잖아. 30년을 자기 개성대로 살던 두 사람이 한 집에서 맞춰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잠 자는 습관부터 먹고 씻는 방법까지 다르다잖아. 그치만 이런 이유로 갈라선 친구는 아직 못 봤다. 그럼, 性격차이라는 그 이유? 그게 요즘 시대에도 이유가 될까? 영화 보고 커피 마시는 것처럼 섹스도 데이트코스인 요즘 세상에 그런 게 결혼 후에 새삼 문제가 될까 싶다. 문제될 정도로 하자(?)가 있다면 아예 결혼도 안 할걸.
도대체 그럼 뭐?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는 민감한 일이기에 그저 들리는 소문만으로 그 이유를 짐작하는 수밖에.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소식통에 의하면 결혼을 결심하게 했던 그 잘난 조건들이 이혼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더란 거다.
평생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능력 있는 남편을 얻는 대가라 생각하고 바리바리 혼수까지 싸갔는데, 그걸로는 택도 없는 귀하신 아들이라고 시어머니가 사사건건 시비란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하도 있는 체를 하길래 괜찮겠다 싶어 결혼했더니 사실은 쥐뿔도 없었다는…오히려 여자 덕 좀 보려고 이것저것 해달라는 게 끝도 없더라고 한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볼 때마다 말초신경 자극하는 얘기들로만 잘도 지어낸다 했더니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었네.
이런 얘기 들으면 조건 따지는 여자들의 비참한 결말이라 쌤통이라 생각하는 남자도 있겠지. (그거 참 없어 뵈니 그러지 말아주길…) 그렇게 치면 상대방 남자도 마찬가지지. 좀 잘났다고 끝도 없이 바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이혼하게 된 거니까. 누가 더하고 덜할 것도 없다.
어쨌든 이런 얘길 듣고 '결혼의 조건은 역시 사랑!'이란 교훈을 얻기엔 그렇게까지 순진한 나이도 아니고 결혼이란 게 더 골치만 아파질 뿐이다. 저렇게까지 꼼꼼히 따지고 계산하고도 실패하면 도대체 얼마나 더 머릴 굴려야 하나 싶고… ^^;
할 수 없지. 머리 뽀개지지 않으려면 '결혼이란 할 때 되면 다 하게 돼있는 것'이라고 운명이나 운운하는 수 밖에. |